최근 정부와 학계, 그리고 산업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흥미로운 논의 중 하나가 바로 특허청(Patent Office)을 지식재산처(Intellectual Property Agency/Ministry)로 확대·개편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확대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이는 데이터 시대와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지 알아볼 예정입니다.
특허청은 지금까지 발명 특허와 상표, 디자인 보호 등 ‘전통적 지식재산권’ 중심의 업무를 수행해왔습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단순한 특허 등록이나 분쟁 해결을 넘어 데이터 자체를 새로운 지식재산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확대될 가능성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특히 데이터와 지식재산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이 직면한 과제와 기회를 분석해보겠습니다.
특허청에서 지식재산처로, 변화 논의의 배경
특허청은 전통적으로 발명가, 기업, 연구자가 만든 특허·상표·디자인·실용신안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흐름을 보면, 지식재산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자산의 부상
예전에는 물리적인 발명품이나 기술에만 특허가 주어졌지만, 지금은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 디지털 콘텐츠 같은 비가시적 자산이 막대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구글이나 메타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특허만으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 자산과 플랫폼 네트워크 효과 덕분에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국가 경쟁력의 변화
국가의 힘이 과거에는 석유, 철강, 제조업에서 비롯되었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지식재산(IP)에서 비롯됩니다. 즉, 한 나라가 보유한 데이터의 양과 활용 능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청이라는 ‘특허 중심 조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데이터와 지식재산 전반을 포괄하는 지식재산처로의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계 요구
스타트업과 신산업 분야에서는 기존의 특허 제도로는 보호가 어려운 데이터 활용 문제, AI 학습 데이터의 소유권, 알고리즘 권리 보호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습니다. 따라서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한다면 특허청은 보다 광범위한 권리 보호와 제도 설계를 담당하는 ‘지식재산 총괄부처’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는 새로운 지식재산이 될 수 있는가?
데이터는 이제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전략적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데이터는 과연 특허나 저작권처럼 법적으로 보호되는 지식재산이 될 수 있을까요?
데이터의 이중성: 공공재 vs. 자산
데이터는 공공성을 지니는 동시에 경제적 가치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상청의 기상데이터는 국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 성격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민간 기업이 이를 가공하여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때는 ‘자산’으로 기능합니다. 이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법적 지위 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AI 시대와 데이터 권리 문제
인공지능은 대규모 데이터셋을 학습하여 작동합니다. 이때 학습 데이터의 소유권과 저작권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미지 생성 AI가 수많은 화가의 작품을 학습했다면, 그 결과물은 누구의 지식재산일까요? 화가? AI 기업? 아니면 전혀 새로운 권리 주체?
이 문제는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논의하는 주제이며, 한국도 이제 데이터 기반 지식재산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데이터 IP 제도의 필요성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데이터베이스 보호법이나 데이터 권리 강화 정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지식재산처를 신설하게 된다면, 단순히 특허·상표 등록을 넘어서 데이터를 지식재산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제도 설계를 추진해야 합니다. 이는 데이터 유출, 무단 활용, 빅테크 독점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나아갈 길: 지식재산처와 데이터 거버넌스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확대된다면,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데이터 거버넌스와 IP 생태계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정책적 방향
데이터 보호와 활용의 균형: 지나친 규제로 혁신을 막지 않으면서도, 데이터 소유권을 명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국제 표준 정립: 데이터 IP에 대한 국제 규범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이 선도적으로 제도화를 추진할 경우 아시아를 대표하는 규범 제정국이 될 수 있습니다.
산업별 맞춤형 제도: 의료, 금융, 교육, 콘텐츠 등 각 산업마다 데이터의 성격이 다르므로 차별화된 지식재산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산업계와의 협력
지식재산처가 출범한다면, 스타트업·중소기업·대기업과의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 데이터 거래소, 데이터 가치 평가, 데이터 인증 제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안심하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고, 개인은 자신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받을 수 있습니다.
국민 생활과의 연결
데이터 기반 지식재산 제도는 단순히 기업이나 연구기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이 창작한 사진, 영상, 글도 데이터이자 자산이 될 수 있으며, 헬스케어 기기를 통해 측정된 개인 건강 데이터 역시 권리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식재산처는 결국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생활밀착형 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입니다.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확대하는 논의는 단순한 조직 명칭 변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데이터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지식재산 패러다임을 세우는 작업입니다. 앞으로 한국이 이 변화를 선도할 수 있다면, 단순한 특허 행정기관을 넘어 데이터와 지식재산을 아우르는 글로벌 지식재산 허브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이터는 이제 우리 모두의 일상과 국가 경쟁력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식재산처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지도 모릅니다.